일본에서 정교한 문화의 중심지가 된 가나자와
오늘날의 가나자와는 일본의 평화로운 시대인 에도 시대(1603-1868)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가가번을 가나자와에서 다스리고 있던 마에다 가문은 지금의 가나자와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미술 공예품을 가져오고 육성했습니다. 가나자와는 300년 가까이에 걸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조카마치가 되었습니다. 현재 에도시대의 거리가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나 시민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우아한 도시 중 하나인 가나자와의 역사를 꼭 확인해 주세요.
에도 시대
가나자와의 430년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1583년에 가나자와성을 인수하고 조카마치로서의 가나자와의 역사를 시작한 마에다 도시이에부터 에도시대의 280년의 역사의 공적이, 오늘의 가나자와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에다 가문의 권력과 부는 도쿠가와 막부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마에다 영주는 쇼군에게 정치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학문과 문화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일본 전역의 저명한 학자와 장인을 자신의 영역으로 초청하여 다도와 노가쿠와 같은 문화 예술을 지역에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풍요로움은 지위가 높은 무사뿐만 아니라 서민들조차도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소양 향상의 요소는 지금도 가나자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미술품과 공예품, 그리고 문화 활동과 무대 예술을 사랑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가나자와(金沢)는 문자 그대로 ‘금의 습지대’를 의미합니다. 가나자와는 ‘금’이라는 문자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위대한 도시라고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감자를 캐는 도고로라는 농민이 늪지에서 사금을 발견했다는 전설을 믿는다면, 1583년에 마에다 도시이에가 가나자와성에서 가가번을 지배했을 때의 가나자와의 힘은 그 이전부터 특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1868년 메이지 정부가 막부를 교체하면서 마에다 가문의 정치권력은 도쿄의 중앙정부로 옮겨졌습니다. 근대의 일본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한때 마에다 가문의 부로 길러진 전통 공예와 문화는 에도 시대 이후 일단 쇠퇴했지만, 가나자와 시민과 장인들은 이러한 전통을 후세에 계승하여 오늘날같이 가나자와를 문화의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나자와는 연합군의 파괴적인 폭격에서 벗어났습니다. 마에다 가문의 평화로운 에도 시대와 함께 가나자와는 430년 동안 단 한 번도 전쟁이나 큰 자연재해를 겪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에도 시대의 건물이 여전히 거리 전체에 남아 있으며, 현대적인 요소와 공존하면서 후세에 전해지고 있습니다.